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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피정 - 경계와 소란 속에 머물다 (커버이미지)
작가 피정 - 경계와 소란 속에 머물다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노시내 지음 
  • 출판사마티 
  • 출판일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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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티의 온(on) 시리즈 3권이 출간되었다. 『마이너 필링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등을 옮긴 ‘믿고 읽는 번역가’ 노시내의 『작가 피정』이다.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스위스, 러시아, 파키스탄으로 옮겨 다니며 26년 넘게 타국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전작 『빈을 소개합니다』, 『스위스 방명록』을 통해 과거에 박제되지 않은 도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도시의 이모저모를 때론 냉정하게, 때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어내며 내부자이자 외부인으로서 독특한 균형 감각을 여실히 보여준 그였다. 세 번째 작품 『작가 피정』은 그의 바깥이 아니라 그의 안에서 시작한다. 책을 옮기는 일, 오랜 지병을 품고 있는 몸, 곁에 있는 사람을 고향으로 여기는 삶...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피정의 시간을 가지며 써내려간 글은 어느덧 독자를 그의 곁으로 끌어당긴다.

옮기는 삶, 옮겨낸 삶

저자가 여기에서 저기로 거처를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며 능숙해진 것이 있다면 “더하기보다 없애는 일”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것. 이 포기가 쉽지 않아 고민할 때면 “무엇을 갖기보다 무엇을 하는 데” 정성을 쏟는다. 그중 하나는 번역이다.
그에게 번역은 “낯선 곳을 돌아다니며 사느라고 새로운 환경과 급변하는 일상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안심하고 들어설 수 있는 한결같은 공간”, “익숙한 언어를 포기할 것을 강요당하지 않는 공간”이다. 이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책을 번역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 여성, 소수자, 이민자의 이야기, 혹은 통념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찾았다.
그는 이 책도 번역을 하듯 썼다고 말한다. 시시때때로 선명하게 느끼는 정체성을 관통한 경험을 전하는 것이 번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이 안고 사는 불안과 우울,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에 대해 쓴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를 번역하며 깊이 감응했던 일(62쪽), 아시아 여성의 얼굴을 초밥에 빗대어 만든 로고에 분노하여 유명 초밥 체인점에 항의 메일을 보냈던 일(147쪽), 취리히의 관광명소에서 식민주의의 역사를 되짚어본 일(140쪽), 모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오해(187쪽) 등 그는 자기 안에 오랜 시간 응축된 일들을 진솔하게 옮겨냈다.

언어의 묘미에 취하다

번역가라는 직업 때문일까, 오랜 타국 생활의 영향일까. 그는 낯선 단어나 사람 이름을 보면 그 뿌리와 역사를 추적하고, 귀에 흘러들어오는 대화 소리를 듣고 어느 나라 언어인지, 어느 지역 억양인지 추측하기를 즐긴다.
취리히 골목을 걷다가 광고판 문구 ‘파스콰 인 치타’(Pasqua in Citta)를 보고 이탈리아 부활절 빵 ‘콜롬바 파스콸레’(colomba pasquale)를 떠올리며 유럽 언어들부터 히브리어까지 단어들의 어원과 어파를 살피거나(283쪽), 추운 날씨에 식당 야외 좌석에 앉아 요란하게 수프를 먹으며 슬라브 억양이 섞인 미국식 영어로 웨이터에게 말을 거는 사람을 보고는 러시아인이 아닐까 짐작하다가 곧 그가 러시아어로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반가워하는 식이다(69쪽). 그러나 이런 추측에 러시아인을 일반화하는 선입견이 담겨 있음을 이내 자각한다.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며 그가 적실히 알게 된 바가 있다면 사람은 국적, 인종, 언어를 불문하고 저마다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정의 장소 취리히에서 그의 언어 감각은 한층 더 예리해진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 네 개 공용어를 쓰는 나라이고, 취리히 인구의 3분의 1이 외국인이다. 공영방송이 네 개 언어로 제작되며, 물건에 붙은 라벨에는 최소 두 개 공용어가 표기된다(47쪽). 문 밖으로 나가면 온갖 언어의 향연이 펼쳐진다. 종종 언어로 인한 해프닝이 벌어지고, “이민자를 현지 사회로 통합하는 일에 장벽”이 생기기도 하지만, “남이 나와 같은 언어를 꼭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인식하며 살아”간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태도, 다원주의가 품고 있는 가능성은 단일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 독자들에게 생각거리를 잔뜩 던져준다.

주워 모은 말들

이 책 말미에는 저자가 오랜 시간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힌 말들, 그중에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새겨진 단어와 문장 들을 적어 내려간 「주워 모은 말들」(315쪽)을 실었다.
러시아어, 스위스 독어, 표준 독어, 우르두어, 이탈리아어, 미국식 영어, 남아시아식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여섯 개 나라, 열 개 도시에서 주워 모은 스물 두 개의 말들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면, 그 말들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물 한 잔이 열어주는 것들

음식에 보수적인 사람이 진짜 보수적이라는 세간의 평에 빗대어 저자를 보면 이토록 열린 사람도 없어 보인다. 그는 제일 먼저 미생물에 자신의 소화관을 내어준다. 물이 깨끗한 스위스에서든, 물이 심각하게 부족한 데다 식수의 안전성마저 낮은 파키스탄에서든,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신속한 적응을 위해” 물을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켠다. 현지의 미생물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마주치는 온갖 낯선 것들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한번 마음을 열면 자꾸만 호기심이 생기고, 그는 시선이 가닿는 대로 부지런히 현지 음식을 탐색한다. 이는 저자가 무언가를 소유하는 대신 택한 또 하나의 정성을 쏟는 일. 음식은 먹으면 사라지지만, 풍미를 만끽하는 현재에 집중하게 하고, 타인과 대화의 물꼬를 터주고, 나와 다른 세계의 연결점이 되어준다.
파키스탄 현지인의 집에서 양고기를 대접받으며 그들의 식문화와 환대의 방식을 배우고(86쪽), 모스크바의 과자 가게에서 무얼 살지 망설일 때, 불쑥 자신의 과자 봉지를 열어 맛을 보라고 권한 러시아 사람에게서 러시아식 다정함을 느끼며 손을 넣어 호의에 응답한다(31쪽). 그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라마단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자세히 들여다본다. 라마단 동안의 금식은 마음을 비우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규율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주로 서민이며, 금식 해제 뒤에 먹을 음식 만드는 노동은 여성의 몫(155-159쪽).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면 때때로 한 사회의 씁쓸한 진실 앞에 도달하게 된다.

“Enter in and partake”
들어가서 참여해

떠남과 머무름, 만남과 헤어짐을 숱하게 반복하며 저자는 ‘집’과 ‘고향’의 정의를 바꾼다. 물리적 공간에 의미를 두는 대신 곁에 있는 사람들을 고향으로 삼는다. 타국 생활에서 인간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현지 문화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으로 삼고,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물론 가끔은 “만사가 귀찮고 허무해져서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처럼 지내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그럴 때면 오래도록 마음속에 새겨둔 따뜻한 격려를 떠올렸다.
“Enter in and partake—it is a way of life, as all communities are.”
(들어가서 참여해—모든 공동체가 그렇듯, 그게 살아가는 방법이야.)
그는 어떤 일에 참여해 남이 주는 것을 받고 내 것을 나눈다는 의미가 있는 partake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사람을 사귀고, 말을 배우고, 현지 음식을 즐기고, 역사책을 읽고, 현지 신문도 자주 들춰”보며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그 도시의 내부로 발을 내디딘다.
그가 고향으로 삼고, 선생님으로 삼고, 서로의 일부를 나누고자 했던 이들과 보낸 시간들에서 유독 훈훈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인연의 소중함, 타인과 관계 맺는 일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진심으로 상대를 아끼고 돌보며 참여하는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바깥으로 나아가기

저자의 피정은 날아드는 기억과 생각으로 소란했다. 그에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요히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주한 사회를 이해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 의식을 잃지 않고, 직접 부딪혀보며 낯선 것들을 하나하나 새롭게 배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노출하는 에세이가 호황을 맞은 시대다. 많은 사람이 일기를 쓰고, 자기 고백을 하고, 나의 취향, 나의 감정, 나의 느낌에 골몰한다. ‘나’들의 범람 속에서 저자는 “책임감과 자신감과 두려움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그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는다. 나를 파고드는 대신, 나를 둘러싼 것들을 응시하고, 탐구하고, 주저하면서도 열린 상태로 해석하고, 소화하고, 썼다. 자기로부터 시작해 다시 자기에게로 안착하지 않고, 바깥으로 시선을 확장해 나가는 저자의 글쓰기는 독자들의 시야를 트이게 해줄 것이다.

저자소개

연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지를 떠돌며 20년 넘게 타국생활 중이다. 지금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머물며 글을 짓거나 옮기고 있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일본의 재구성』 등의 책을 옮겼고, 『빈을 소개합니다』 『스위스 방명록』 『작가 피정』을 썼다.

목차

들어가며



서울에서 취리히로



일 일째

이 일째

삼 일째

사 일째

오 일째

육 일째

칠 일째

팔 일째

구 일째

십 일째

십일 일째

십이 일째

십삼 일째

십사 일째

십오 일째

십육 일째

십칠 일째

십팔 일째

십구 일째

이십 일째

이십일 일째

이십이 일째

이십삼 일째

이십사 일째

이십오 일째

이십육 일째

이십칠 일째

이십팔 일째

이십구 일째

삼십 일째

삼십일 일째

삼십이 일째

삼십삼 일째

삼십사 일째

삼십오 일째

삼십육 일째

삼십칠 일째

삼십팔 일째

삼십구 일째

사십 일째



취리히에서 이슬라마바드로



나가며

주워 모은 말들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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